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키모토 야스시 (문단 편집) == 업적 == 방송 작가로서는 '올나잇 후지', '[[오냥코클럽|유우야케 냥냥]]', '[[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이었습니다]]', '[[더 베스트 텐]]', '[[우타방]]' 등 전설급 프로그램에 관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. 또한 작사가로서는 [[코이즈미 쿄코]]의 'なんてったってアイドル(뭐라해도 아이돌)', [[톤네루즈]]의 '雨の西麻布(비내리는 서쪽 아자부)'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였으며 [[오냥코클럽]], [[AKB48]] 등 다수의 아티스트 곡 작사에 손을 대는 한편, 작가나 영화 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. 가사 말고도 TV 각본이나 애니메이션 각본, 심지어 영화 각본도 쓰는데 [[착신아리]]와 [[아즈키쨩]], [[리리카SOS]]가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. 또한 AKB48을 모델로 한 코믹스인 [[AKB49]] ~연애금지조례~와 애니메이션 --마크로스--[[AKB0048]]의 제작에도 참여했다.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된 코끼리의 등, 아드레날린의 밤, 사랑공장. 후에 이 소설들을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AKB48 멤버들이 나오기도 했다. 또한 공연 연출가로서 '[[이병헌]]의 20주년 기념 공연' 등의 기획을 맡기도 했다.[* 이병헌의 일본 싱글곡 작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싱글곡 뮤직비디오에 데뷔전 [[마츠이 쥬리나]]가 출연하기도 하였다.[[https://youtu.be/Fksca3QA0vk|#]]] [[자기계발서]]도 집필했다. 일본의 뇌 과학자 모기 켄이치로는 아키모토 야스시의 측두연합야라는 기억의 중추에 데이터가 굉장히 많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며 우리가 아키모토 야스시의 아이디어라고 접하는 것은 천개 중에 세 개 정도밖에 안된다고 언급했다. 프로그램 '정열대륙' 출연 때는 '자신은 천재가 아니도 아티스트도 예술가도 아니다. [[피카소]]를 흉내내는 광고 회사원. 피카소가 되고싶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피카소는 될 수 없다'고 얘기한 적이 있다. [[작가]] 하야시 마리코는 "[[아키하바라]]에서 ([[AKB48]])을 한다고 했을 때 아키모토 야스시도 빗나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(AKB의 성공을 보고) 이 사람은 빗나가는 일이 없구나 하고 굉장히 감동했다. 이렇게 오랜 동안 일을 하면 "그 사람은 더 이상 안되겠네", "조금 빗나갔네", "시대에 안 맞네" 하고 반드시 이야기를 듣지만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굉장하다. 시대가 그의 편이 되어 주고 있다는 느낌, 시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"고 언급했다. 하지만 아키모토도 사람인지라 실패나 추문도 많다. 대표적인 예로는 [[세가]]의 [[드림캐스트]]. 세가가 게임기 제작에서 철수한 결정적 원인은 드림캐스트 실패에 있는데, 아키모토 야스시 또한 이 실패에 한몫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. 당시 아키모토 야스시는 [[SEGA]]의 임원으로 드림캐스트 프로젝트의 프로모션 부분을 총괄하고 있었고, 드림캐스트의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[[세가]]와 [[후지TV]]의 후원으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게 된다. 이 아이돌이 '헤이세이의 오냥코클럽'으로 불렸던 [[체킷코]]. 여기서 체킷코는 애당초 드림캐스트의 프로모션을 위한 프로젝트성 아이돌 그룹이었는데,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킷코의 여러 활동은 아키모토 개인의 사적인 욕구에 충실한 것들뿐이었다는 비판이 있다. 결과론적으로 아키모토 야스시는 약 100억엔 정도를 프로모션 비용으로 날려먹고, 드림캐스트는 실패하게 되었으며, 체킷코도 대실패했다. 후에 아키모토 본인은 자신은 체킷코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, '망한 후에' 딱 잡아떼고 있지만, 체킷코용 프로그램인 "DAIBA테키!!"는 '드림캐스트 제공, 아키모토야스시 사무소 협력'이라고 명시된 바 있다. 또한 [[호리에 타카후미]]와 손잡고 [[라이브도어]] 계열의 컨텐츠회사 중역으로 취임했지만, 저 유명한 [[라이브도어]] 쇼크[* 인터넷포털 라이브도어의 분식회계와 주가파동과 관련하여 호리에 타카후미 前사장이 체포된 사건. 사건이 일어나자 라이브도어의 주가는 폭락하였고 피해 주주는 2만 명이 넘었다.]가 일어난 후 재빨리 사임하고 손을 턴다. 이런 실패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, 반대로 아키모토 본인이 작가진 중 한 명 겸 작사가로 참여했을 뿐인 [[오냥코클럽]]이 대성공한 후 마치 자신이 오냥코클럽을 전부 프로듀싱한 것인양 TV 등에서 말하며 경력에 크게 집어넣는 아키모토 야스시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하다. [[톤네루즈]]의 이시바시 타카아키는 "저는 30년 간 여러 가지 모습을 봐왔지만 계속 변하지 않는 점은 '친절함'이네요. 대신에 모두가 모였을 때 그걸 알려주지 않으면 굉장히 화를 냅니다. '왜 나한텐 안 가르쳐 준 거야!' 하고..."라고 언급했다.[* 2010.12.19 O.A [[TV 도쿄]]『ソロモン流(솔로몬류)』인터뷰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